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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나의 새 가족들
2 김교현 2006-12-19 14:56:54 4614

인도 온지도 어느덧 7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동안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고, 나의 행동에 대해 이해를 못해 주는 사람들이 싫기도 했지만, 난 그 속에서 내 스스로 삶을 이겨내는 방법를 알게 되었고 지금의 내 자신이 커져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는 지금 17명의 친구들과 이곳에 같이 왔고 그들과 함께 부딪치며 일어났던 좋은 추억들과 내가 지금 격고 있었던 일들에 대해 몇자 적으며 나의 추억록을 완성해 볼까한다. 

인도라는 곳을 오기 전 철민이 형과 했던 우스게 소리가 생각난다. '형 우린 인도에 유학가서 1년 동안 있으면서 영어와 컴퓨터를 동시에 배워서 돌아오면 영어는 오성식, 컴퓨터는 빌 게이츠만큼 할수 있을꺼야.' 말도 안 되는 소릴 한 것이라고는 나도 알지만, 그 만큼 패기와 각오는 그 누구보다도 컸었고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려고 해 왔다.

봄베이 공항에 도착 -

처음으로 외국이라는 곳에 온 나는 너무도 설레고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내가 눈으로 보았던 이 곳은 한국에서 들었던 몇몇 경험자의 말과 별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던 터라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후진국이라도 공항 만큼은 깨끗하고 단정할 줄 알았는데,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냄새가 나를 어지렵게 했고, 하다 못해 오바헤트가 솔릴 정도의 악취가 나의 몸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공항 밖으로 나와 우린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새벽이지만 공항 주위는 많은 인도 사람들과 보지도 못한 리어카 같이 생긴 자동차들로 매우 혼잡했다. 제각기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인도인들이 우리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신기하게 보이던지 모든 시선들이 우리를 향해 있었고, 난 그런 시선들이 익숙치 않은 터라 기가 죽었다. 나의 눈은 땅를 향했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몇 안되는 거리가 얼마나 멀어 보이던지 목이 다 저릴 정도였다.

낡아빠진 버스를 타고 인도 거리의 새벽녁을 박차며 달리면서 창밖의 인도 풍경을 바라보며 난 "내가 과연 이런 이곳에서 1년 동안 낯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열악한 환경, 이상한 냄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시커면 인도인들을 내 눈으로 직접 만끽하다보니 두려움이 쌓이기 시작했다. 우린 버스를 타고 봄베이에서 5시간 떨어진 뿌나(PUNE)라는 도시 한 복판에 있는 YMCA호텔에 도착했다. 

하지만 YMCA는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도 깨끗했고, 다행인 건 이상한 냄새가 그렇게 심하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이런 곳이라면 잘 버틸 수 있을꺼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좋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난 2명의 형(철민, 희복)과 313호에서 1달 반 동안 같이 생활했다. 지금은 '전설 속의 313호'라고 불릴 정도로, 그때 그곳에서 철민, 희복이 형과의 생활은 나에게 많은 추억을 남긴다. 

철민형은 아침 7시만 되면 칼같이 일어나 늦잠을 자는 희복이형과 나에게 항상 자명종 시계와 같이 몇 마디의 영어를 커낸다. Excuse me, get up~~~~! Let's go to breakfast. 그럼, 우리는 철민이 형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잠에서 깨면 한참을 멍하니 앉아 주의를 살펴 보고는 지금의 나의 생활이 꿈이 아님를 확인하곤 약간의 웃음을 지으며, 철민이형과 나는 다른 학생들의 방을 휘저으며 늦잠에 취해 있는 학생들을 깨우고는 함께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아침 식사는 토스트, 계란 후라이, 커피 같은 간단한 음식뿐이지만, 인도 음식에 적응이 안 되어 있는 나로선 점심과 저녁에 비하면 너무도 친숙한 음식 들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만큼은 나에게는 너무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인도 음식은 대체적으로 기름도 많이 들어가 있고, 더욱이나 봄베이 공항에서 느꼈던 구역질 나는 향내가 너무도 진했기 때문에 매번 먹을 때마다 설사를 하기 일쑤였다. 

기쁜 마음으로 내 방에 돌아와 9시까지 Aptech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고 YMCA를 나오는 순간부터는 모든 것이 새로운 터라 항상 약간의 긴장감이 들긴했지만, 새로움 속에서 난 또 다른 즐거움을 느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 aptech의 IT모듈과정, 한국에서 2번에 걸쳐 배웠고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많이 접했던 내용이라 그렇게 큰 어려움도 없을꺼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판단, 수업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가방을 챙기고 Aptech을 나와 뿌네 시내의 이곳저곳을 돌아 다니며 많은 걸 느끼고 체험하려고 했다.

깨끗하지 못한 뿌네의 거리, 우리를 볼 때마다 '바바'거리며 손 내미는 인도 거지들, 외국인은 봉이라고 생각하는 상점 주인들, 여기저기서 뿜어되는 자동차와 릭싸 매연, 돌아다닐 때마다 이곳의 낯선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 했고, 과연 이런 곳에서 아무런 탈없이 1년이라는 기간을 머물 수 있을까 하는 안 좋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18명이 모두 느끼고 있지 않았나 싶다. 

이런 생각을 갖고 YMCA에 들어 오면 내 몸에 있는 온갖 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피곤함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한다.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로비로 내려가 저녁식사를 하지만, 모두 다 더위와 낮선 생활에 지쳐 예민한 데다가 18명 모두가 학교 다니면서도 잘 몰랐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소한 농담에 많은 트러블이 생겨 좋은 분위기에서 식사 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우리 313호가 전설 속의 room으로 지금까지 사람들에 입에서 떠들어 되는 이유는, 어두움에 가려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언제나 웃음 꽃을 선사해 주었고, 우리 방에 있는 동안은 참 맑고 한국에 있었을 때의 모습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밤마다 우리 방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 덕분에 YMCA에 있는 동안은 공부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난 사람들과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것을 무지 좋아했기에, 그리고 대화속에서 각자의 인생살이를 얘기하면서 많은걸 배우고 느끼기 때문이다.

어느 하루는 철민형과 몇몇 학생들의 인도의 한 대학교를 다녀오더니만, 'YMCA를 나간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학교에서 한 한국 학생을 만났는데 좋은 집 몇 군데를 소개시켜 줬다고 했다. 좋은 일이긴 했지만 한국에 있을때 나랑 제일 친했던, 그리고 나와 함께 방을 쓰고 있는 형이 YMCA를 나간다니....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것도 나를 떼어놓고. T.T

갑자기 난 혼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됐고, 나도 내가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몇 친구들(희복, 은영, 정민, 효연) 과 의논하여 PUNE 외곽 지역의, 한국으로 따지자면 시골과도 다름이 없는 저렴한 가격의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님을 통해서 얻게 된 집이다. 집은 APTECT에서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고, 더욱이나 같이 이사오는 사람들 모두 한국에서나 YMCA에서나 친한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잘 지내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옆집에 사는 선교사님과 종교 문제와 연관되어 안 좋은 일들이 생기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그래서 이사가는 것에 대해 며칠 동안 혼자서 고민했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들 때면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큰 힘이 되었지만, 이곳은 좀 여건이 달랐다. 이곳은 내가 의지하거나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혼자 OVERCOME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나 혼자 살면서 아무런 도움 없이 이 곳에서 모든 일을 헤쳐 나가고자 <상위>라는 마을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이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13평 남짓한 작은 빌라.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안에는 시멘트 찌거지와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 있었다. 좀 지저분해 보였지만 약간 청소만 한다면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바로 집 앞에 8개의 작은 천막을 쳐놓고 거지같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광경을 봤을 땐 계약하는 것을 꺼렸지만, 옆에 계신 선교사님이 말하기를 '저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지 같이 보이지만 티 없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자세히 그들을 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초라한 천막집이지만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 맑고 순박해 보였다. 5,6살쯤 보이는 한 어린 아이가 2살 된 아기를 안고 밝게 웃으며 노는 모습,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참으로 여유로와 보였다. 공부나 돈에 찌들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완 뭔가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에, 지금의 내 모습에 회의가 들 정도로 부러워 보였다. 가진 것도 없고 겉으로 보기에는 지저분해 보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방식으로 순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

<상위>로 이사온 후 교수님이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집에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침대와 책상이 고작이지만 난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챙피하지 않았다. 왜냐면 집은 초라했지만 난 YMCA나 <신디꼴로니>처럼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지도 않았고, 내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살아 왔던 그런 나의 공간을 난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는 야수같지만 항상 동생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우리 큰형 희복이 형,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해가면 항상 동생들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상위>의 큰 언니이자 엄마로 통하는 나의 유일한 동감내기 친구 은영, 가끔 우리에게 희기한 춤을 선보이며 기쁨을 주는 정민, 눈치없이 행동하는 것은 이지만 가끔은 오빠, 언니 못지않게 어른스럽게 보이기도 한 우리 효연이... 우린 이곳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서로 아픔과 힘듬에 힘이 되어주었다.

공부로 인해서 바쁜 우리에게 엄마처럼 항상 자상하게 해주시는 우리 조 선교사님, 우리를 너무 좋아해서 때로 우리를 귀찮게 굴기는 하지만 타국에 와서도 항상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는 우리 귀여운 5명의 동생들, 2층에 여자들 두 명만 산다고 자기가 보디가드인 양 약한 두 여인네들을 보호라려고 항상 집앞에서 24시간 동안 굿굿히 지키고 있는 씩씩한 우리 바우(멍멍이)... 난 이들과 가족과도 다름이 없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주고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나의 상위 생활, 가끔 집에 들어와 설렁한 공간에 혼자 있으면 외로움과 힘든 생활에 지쳐 울음도 터트리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 주는 여기의 가족들, 서로 자기 분야에 공부하기에 바쁘면서도 친구가 어려운 일에 처하면 함께 모여 도와 주는 우리 인도창 친구들, 난 이들이 있기에 지금의 인도 생활이 재밌고, 어쩌면 이들 덕분에 꿋꿋이 인도 생활을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7개월 동안의 타국 생활를 하면서 외로움에 지치고 사람들 사이에서 생긴 트러블로 인해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지만, 난 이곳에서 한국에선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경험했고, 스스로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같고, 이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은 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지못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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