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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1년을 보내고
10 이주연 2006-12-20 09:42:32 11625

내가 인도에서 가시적으로 얻은 것을 서술하기란 쉽지 않다. 따로 자격증을 공부하여 자격증을 획득한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들은 것처럼 영어 책 한 권을 다 외워, 영어에 능숙해진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전공공부는 너무 폭 넓게 배워, 한 개를 집중해서 공부 할 기회가 적당치 않았었다. 
하지만 나는 인도에 머문 1년 동안, 한국에서는 만날 수 없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시간의 소중함을 배웠다. 더군다나, 영어 말하기의 장벽을 조금은 허물었다. 전공 또한, 내가 흥미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
20이 넘게 흐르도록, 사실 나는 살아있는 교육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들이 다 인줄 알았고, 책으로 하는 공부가 나의 전부였다. 책 한자 보지 못했을 때의 불안함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컸었다. 책 없이는 영어 한마디 하는 것이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졌었다. 용기가 없고, 자신감이 없었다. 부모님 없이는 어떠한 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었다. 세상이 두 쪽이 난다 해도, 모든 것이 부모님 손을 통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나는 가시적인 성과보다 더 한 것들을 이루었고, 얻었다.
첫 번째로, 무엇이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렀다.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돈 쓰는 일, 집안 청소까지 모두 스스로 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부모님이나 주위의 의견에 따라 움직였었다. 결국 나는 너무나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스스로 한다는 것은 많은 부담감과 책임감이 겸비된다. 그러한 이유로, 스스로 하는 일을 꺼려했었다. 일이 조금 잘못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고,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면 그만이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인도는 그러한 상황을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간단한 돈 문제를 들 수 있다. 돈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모든걸 스스로 계획하고, 수행하여야 했다. 결국 부모님의 손을 통해서가 아닌, 직접 전기세를 계산하고, 물세를 계산하여 일정한 지출에 대해 계획을 짜고, 생활비에 대해서 계획을 짜는 일도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여행이 있는 달은 스스로 지출을 줄여 돈을 맞춰나갈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스스로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비록 그 돈이 큰 돈이 아닐 지라도 아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고, 어떻게 활용해야 낭비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집안일과 큰 일을 결정함에 있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면에서도 극소수의 친구들만 만나다가 여러 명을 만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저 사람의 성격은 왜 저렇고, 저 사람의 습관은 왜 저런지, 항상 부모님께 털어놓고, 불만을 토했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스스로 이해하고, 사람을 파악하여 내가 그 사람에게 맞춰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1년 동안 많은 사람들과 별 어려움 없이 지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자신감과 더불어 영어말하기의 방법을 습득했다.
처음 말을 걸기 전에는, 내가 한 말이 틀릴 까봐, 내가 한 이야기를 못 알아들을 까봐 말 거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해야 할말을 적어서 외워 말하는 식으로 입을 땠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고, 화제가 전환되었을 때에는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예상하던 온갖 종류의 오류들이 그대로 속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꿀 먹은 벙어리였다. 꼭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웃으며 넘어갔고, 정말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을 경우에는 주위에 요청을 하곤 하였다. 이야기가 안 통하고, 내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드니, 인도에서 1년 동안 견디기에 너무 힘들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란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다. 서로 파티도 초대하고, 초대 받으면서 몇 마디 되지 않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무엇보다 그 학생들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점이 내가 틀리거나, 말을 못해도 전혀 부끄럽거나, 당황하지 않을 좋은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배워갔다. 지금은 두려움 없이 치과에 가서 치료도 받는다. 지금은 회사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한국말로 된 문서의 설명을 요구하면, 그 친구를 이해시켜주기 위해 무엇인가를 설명할 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러 인해,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무조건 모른다고 회피해버리거나 도망가버리는 것보다 부딪쳐서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영어뿐만 아니라, 프리젠테이션을 통해서 남들 앞에 서서 설명하거나, 말하는 거에 있어서도 많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프리젠테이션은 정말로 귀찮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토요일에 있을 프리젠테이션 때문에 그 주에 배웠던 내용들을 다시 한번 훑어봐야 해고, 나만의 방식대로 설명을 해야 했다. 그것도 영어로 말이다. 엄청난 부담감이었다. 더군다나 선생님은 매번 질문을 던지 셨었다. 금요일 밤만 되면 토요일 날 학원을 갈지 말지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경험이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많은 프리젠테이션의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청중에게 관심을 받고, 지루하지 않게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지,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많이는 알지 못하지만 나만의 방식이 있어 더욱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이러한 자신감들은 내가 사회에서 맞이할 수많은 상황에서 발휘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세 번째로, 인턴 경험이다.
아직 회사생활을 경험하기에는 어린 나이라고 다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인턴을 통해 나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파악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실루엣을 잡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 각기 일하는 부서가 다르고 지위가 다른 사람들을 만난 후에 기분은 내가 한 결 성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학교가 아닌 가정이 아닌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한 것이다. 후에 내가 어느 그룹에 속하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스스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좁은 한국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가치관을 얻었다.
지금까지, 22년 동안 나는 한국에서 생활을 하고, 한국에서 자라왔다. 한국 외의 세상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본적이 없었다. 당연하게,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던 세상이 존재한 것이다.
내가 모르던 세상에도 사람들이 살고, 차가 굴러 다닌다. 이 곳에도 문명이 발전하고,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분명한 것은 굳이 한국땅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기회를 가지고 나를 발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블루오션’ 이라고 부른다. 공급보다는 아직 수요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많은 나라의 기업들이 노리는 곳이 인도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인도를 경험하였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필요할 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우물 안에 개구리가 아닌 것이다. 나의 좁고, 배타적인 세계관을 넓고, 세계지양적인 관점으로 변화시켜준 인도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지금도 수많은 기회와 꿈들이 나를 인도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만 같다.

(이주연, 인도창8기, 글로컬IT학과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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